골육상쟁의 이념 연좌...새 인연으로 풀다

이성봉 기자 / 기사승인 : 2018-11-12 17:5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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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동 작가-신기남 대통령소속도서관위원장
선친들의 '악연' 딛고 숙명적인 만남 화제

지난 10월 24일 강원도 정선에서 전국 도서관대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를 주관한 대통령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의 신기남(66) 위원장은 귀한 손님 한 분을 맞았다. 

 

▲ 전국도서관대회에서 신기남 도서관정보정책위원장이 김성동작가를 소개하고 있다.[한국도서관협회제공]


바로 지난 7월 27년 만에 장편소설 『국수(國手)』를 완간한 김성동(71) 선생. 신 위원장은 한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작품 『국수』를 읽고 감명을 받아 원로작가의 노고를 칭송해 드리고자 만남을 청했다.

그러나 이 둘의 만남은 굴곡진 한국 현대사가 개인의 삶에 남긴 상흔을 어루만지고, 두 가계에 드리워졌던 이념 대립의 그림자를 지우는 뜻 깊은 순간이기도 했다.

김성동 작가의 아버지 김봉한. 그는 한국전쟁 중 국군 헌병대에 의해 총살당했다. 1946년 조선정판사 사건에 연루돼 대전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던 중 1950년 6, 7월 무렵 국군이 대전을 철수할 당시 경찰과 군 헌병대가 대전 근교 식장산 아래 낭월동 일대인 골령골에서 좌익사범을 집단 사살할 때 포함됐던 것이다. 

 

연좌제의 굴레 '삼불(三不)'

김봉한씨는 남로당 박헌영의 비선으로 신분을 드러내지 않은 채 충남도당 문화부장 등으로 활동했다. 2016년 <황해문화>에 발표한 「고추잠자리」는 그가 조선농민동맹(‘전국농민연맹’의 전신) 충남도당 위원장 때 이야기를 쓴 것이다. 지난 3월 돌아가신 어머니(한희전)도 보령지역 여맹위원장을 맡았다.

이런 사정 탓에 김 작가는 스스로 ‘삼불(三不)’이었다고 술회한다. 공무원이 될 수 없고, 군대도 갈 수 없고, 고시로 출세할 길도 막혀 있었다. 이른바 연좌제의 굴레에 묶인 것이다. 결국 고등학교 시절 출가(出家)해 승려가 되었다. 그 뒤 1976년 환속해 소설 <만다라(1980)> 등을 발표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 소설 <국수>의 김성동 작가는 스스로 '삼불'이었다고 술회한다. [사진=이성봉기자]

사실 소설 『국수』도 부모님 세대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으나 시작할 당시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그 윗대로 시대 배경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신기남 위원장은 2004년 연좌제 여파로 구설수에 오른 장본인이다.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 의장 시절 과거사 청산을 주장하던 중 한 월간지에서 그의 아버지 신상묵(1916~1984)의 일제시절 군 경력을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신 위원장은 자신의 아버지가 일제말 전시체제 당시 군에서 생활한 것은 사실이라고 자인했다. 당시는 어쩔 수 없이 강제징집 당한 것인데, 사범학교를 나와 초등학교 교사를 하던 중 군대에 가다 보니, 군 헌병대에서 하사관으로 근무를 했던 것이다.

신 위원장은 논란이 확산되자 결국 당의장직을 사퇴하고 아버지의 행적을 찾아 나섰다. 아버지로부터 고문당했다는 이들도 찾으러 나섰고 활동 전력도 좇았다. 누구보다 친일청산에 앞장서 왔고 과거사 문제해결에 적극적이었기에 아버지 문제도 정면으로 부딪쳐 보자는 생각에서다. 

 

남로당 대 빨치산토벌대장

신 위원장의 아버지는 해방 이후 경찰에서 근무했다. 그가 장성 경찰서장으로 있을 때 6.25 전쟁이 일어났고, 이어 포항지구 전투경찰사령관으로 낙동강지역 전투에 참여했다. 그러다가 1951년 남원 지리산지구 전투경찰사령관으로 옮겼고, 나중에 남원에서 전라, 경상, 충청 3도를 총괄하는 서남지구 전투경찰사령관직을 맡았다. 즉, 지리산 빨치산 토벌대장이었다. 신 사령관은 1954년 제주도로 이동할 때까지 토벌 업무를 진두 지휘했다.

특히 지리산 ‘보아라부대’를 만들었는데, 이는 귀순한 빨치산들에게 관용을 베풀어 부대원으로 받아들임으로써 포용과 화합으로 내전을 수습하려는 의도였다. '보아라부대'에 관한 이야기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발행했던 ‘역사와 비평’(1988년 가을호)에서 밝힌 바 있다. “민중은 부모이며, 3도는 하나”라는 신 사령관 묘비의 글귀는 그의 애민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신 사령관은 빨치산과 내통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화순 경찰서장 시절 여순사건이 일어났다. 그 지역을 통과하는 반군 지휘자에게 단독으로 찾아가 전투가 벌어지면 많은 사람이 다칠 수밖에 없다며 담판을 지었다. 결국 반군은 여순지역 경찰서를 그냥 통과하고 그 지휘관은 그 일로 공개처형 당하고 말았다. 실제로 지금도 장성이나 남원 지역에서 당시 좌익으로 몰렸던 집안에서 신 사령관이 관용을 베풀어 목숨을 살린 식구가 있어 그를 추모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증언도 들을 수 있다. 결국 그의 활동상이 당시 고위층의 마음에 들지 않아 오지인 제주도로 좌천되고 만 셈이다.

신 사령관은 대구사범 동기인 박정희 대통령과도 가까운 사이였다고 한다. 하지만 5.16 군사쿠데타 이후 쿠데타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고 박 대통령의 도움 요청을 단번에 거절했다는 일화가 있다. 이후 둘 사이는 멀어지고 그는 줄곧 야인으로 지내게 된다.

신 위원장은 이런 아버지의 경력을 감추지 않는다. 본의는 아니라 해도 일제치하 헌병으로 복무한 것은 결코 떳떳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자식이라도 광복회에 찾아가서 사죄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해 실행했다. 잘못된 과거는 아버지 세대의 일이라도 자식들이 나서 사죄하고 화해와 해원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신위원장은『국수』를 읽고 작가의 삶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김 작가의 가계에 얽힌 역사적 비극을 깨닫고 출판사를 통해 만나고 싶다는 바람을 전달했다. 신 위원장은 용문에 사는 김 작가를 찾아가 전국 도서관대회 행사장까지 직접 동행했다. 

 

"이제 이념 대결의 장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전쟁은 무지막지하고 이성이 없다. 빨치산처럼 우리 내부 전쟁은 기록조차 미미하다" 

 

▲ 지난달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개소식에서 김성동 작가와 신기남 위원장, 도종환 장관이 만났다. [사진=이성봉 기자]

 

역사 속 이념의 새 만남

김 작가도 이제는 아버지 세대의 이야기를 쓸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신 위원장도 글 쓰는 이로서 아버지 세대의 빨치산 이야기를 언젠가는 써야 한다고 마음먹고 있다. 이번 두 사람의 만남은 역사와 이념의 만남이라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사건으로 기억해야 할 것이다.

최근 첫 작품을 탈고하고 소설가 데뷔를 앞둔 신 위원장은 김 작가를 만나 문학 선배로서 존경한다면서 형님으로 모시겠다고 깍듯이 먼저 인사말을 건넸다. 김 작가도 행사 동안 신 위원장을 아우라 부르며, 이제는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미래 지향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면서 흡족해했다.

신 위원장은 “이제 이념 대결의 장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전쟁은 무지막지하고, 이성이 없다. 빨치산처럼 우리끼리 맞섰던 내부 전쟁은 기록조차 미미하다”고 말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겠다고 했다.

두 사람 모두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다. 김 작가는 글로써 실패한 민중사 이야기를 엮어내고자 한다. 지난 촛불집회 때는 나이든 몸으로 직접 나서 민중의 모습을 체험하고 지켜보기도 했다. 이제 초보 작가로 길을 가고자 하는 신 위원장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UPI뉴스 / 이성봉 기자 sblee@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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