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 속 잠재된 인간 욕망 들여다보기

이성봉 기자 / 기사승인 : 2018-11-07 11:3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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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극장 연극 <에쿠우스>를 보고

“17세 소년 알런은 왜 쇠꼬챙이로 마굿간 말들의 눈을 찔렀는가.”

 

작품을 소개하는 다소 도발적인 질문으로 유명한 연극 <에쿠우스>. 영국 출신 극작가 피터 셰퍼의 희곡이 원작이다.  

  
1975년 운현궁 실험극장에서 공개된 연극 <에쿠우스>는 올해로 한국 초연 43주년을 맞았다. ‘에쿠우스(Equus)’는 ‘말(馬)’을 뜻하는 라틴어로 연극에서는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줄거리는 말 일곱 마리의 눈을 찌른 소년 ‘알런’과 그를 치료하려는 정신과 의사 ‘다이사트’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 다이사트역에 손병호(사진)가 장두이와 함께 배역을 맡았다. [실험극장 제공]


이번 무대는 초연 때 직접 출연한 뒤 그동안 <에쿠우스>를 8번 제작한 이한승 실험극단 대표가 다섯 번째로 연출을 맡았다. 

그는 “피터 셰퍼의 원작을 가장 충실히 구현하고자 했다”며 “완성도 높은 연기를 위해 주역들의 파격적 전라 노출은 물론, 역동적인 무대 실현에 노력했다. 치밀한 구성 속에 이성과 광기, 신과 인간, 원초적 열정과 사회 억압을 그려냄으로써 인간의 잠재된 욕망을 들여다보고자 했다”라고 밝혔다.
  
따라서 곧잘 외설 시비가 붙는 전라 연기도 신의 제단에 놓인 제물을 표현하듯 적절성 여부는 연출상 평가를 앞세워야 할 것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정신과 의사 다이사트 역에 장두이와 손병호, 알런 역에는 전박찬과 안승균이 나섰다. 두 배역으로 이미 검증된 바 있는 장두이와 전박찬에 더해 손병호와 안승균이 새롭게 도전했다. 
  

▲ 손병호가 공연전 UPI뉴스와 인터뷰를 위해 알런으로 함께 연기하는 배우들의 현수막 앞에서 촬영에 임했다. [정병혁기자] 

이날 다이사트를 연기한 손병호는 공연 전 인터뷰에서 “<에쿠우스>라는 작품의 명성은 이미 알고 있지만 내가 직접 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라며 “더욱이 이 작품을 본 적도 없다. 그 점에서 기존의 다이사트와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초반 11회 공연을 계속 맡았더니 상당히 힘들었다. 그동안 해 오던 공연에 내 생각을 접목하려 하다 보니 의견이 맞지 않는 점도 있었다. 계속하다 보니 나름대로 캐릭터가 잡혀갔다”라고 배역에 대한 자세를 설명했다. 

▲ 손병호가 공연전 다이사트가 독백하는 자리에 앉아 연습에 임하고 있다. [정병혁기자] 

“의사는 정열을 파괴할 수는 있어도 창조할 수는 없습니다.” 다이사트의 이 같은 대사는 자신의 환자인 알런이 아니라 자신에게 던지는 메시지로도 읽힌다. 알런을 치료하는 과정을 통해 진짜 환자는 바로 자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빠지게 된다.

 

▲ 전박찬이 지난 여름 <이방인>의 '뫼르소'에 이어 <에쿠우스>의 '알런'으로 연기 변신을 했다.[실험극장 제공]  

  
‘역대 최고의 알런’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전박찬은 또 다시 광기와 트라우마에 휩싸여서 나타났다. 배역을 위해 체중까지 감량한 그는 나이에 걸맞은 신체를 준비하는 치밀함을 보여주었다. 지난 9월 연극 ‘이방인’의 뫼르소가 되었다가 이제 다시 ‘알런’으로 돌아온 것이다. 뫼르소와 알런은 둘 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현대인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두 주인공과 함께 주목을 받는 것은 말 7마리다. 너제트를 비롯한 말들은 역동적 흐름의 완급을 조절함으로써 더욱 극적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공연할 때마다 숱한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 <에쿠우스>는 그동안 한국 연극사에 많은 족적을 남겼다. 김동훈 씨가 창단한 극단 실험극장은 이를 대표 레퍼토리로 삼아 연극 팬들의 열정적인 찬사를 받는 가운데 최초의 상업 극단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이는 소극장 운동을 지켜나가고, 58년 동안 극단 활동을 지속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기도 했다. 또한 알런 역을 맡았던 고 강태기, 송승환, 최재성, 최민식, 조재현, 정태우, 류덕환 등은 최고의 배우 반열에 올라 활발한 활동을 펼쳤거나 펼치고 있다.
  
극작가 피터 셰퍼는 실화를 토대로 2년 6개월에 걸쳐 <에쿠우스>를 완성했는데, 그는 이 작품으로 1973년 뉴욕비평가상과 토니상 최우수 극본상을 받았다.
 
오는 18일까지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에서 공연한다. 2015년에 이어 두 번째로 공연하는 이곳은 말발굽처럼 생긴 객석과 무대 형태로 에너지를 극대화하는 효과를 주기도 한다. 

 

UPI뉴스 / 이성봉 기자 sblee@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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