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차례가 사라진다…국민 3명 중 1명 "안 지낸다"

윤재오 기자 / 기사승인 : 2019-09-09 13:4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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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INEWS〉 & 리서치뷰 조사
추석 가족모임 여행으로 대체 24.2%
"바쁘거나 경제형편 때문에 가족모임 못가"


▲ 추석명절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보다 차례상을 간소하게 차리거나 아예 차례를 지내지 않는 집들이 부쩍 많아졌고 모처럼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명절인 만큼 편한 마음으로 좋은 시간을 보내자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UPI뉴스 자료사진]

# 올 4월 결혼한 직장인 정혜정(30) 씨는 이번 추석연휴에 시부모님을 모시고 1박2일 가족여행을 간다. 정 씨가 "결혼 후 첫 명절인데, 다같이 여행가면 어떨까요?"라고 제안했고, 시부모님도 흔쾌히 받아들여 강원도 양구의 한 펜션을 예약했다. 정 씨는 이번 여행 중에 "설이나 추석 중 한 번은 가족여행을 가면 좋을 것 같다"고 말씀드릴 작정이다.

# 결혼 19년차인 주부 김수미(47) 씨는 올 추석 차례 준비가 예년보다 훨씬 수월하다. 지난해 추석 차례상을 물린 후 시아버지가 "번거롭고 잘 먹지도 않으니 다음부턴 차례상에 전을 올리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김 씨는 "올 설 차례상부터 전을 올리지 않았는데, 일거리가 반으로 줄어든 느낌"이라고 말했다.


추석명절이 달라지고 있다. 교통정체를 감수하며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연휴를 보내려는 모습은 여전하지만, 과거보다 차례상을 간소하게 차리거나 아예 차례를 지내지 않는 집들이 부쩍 많아졌다. 모처럼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명절인 만큼 음식을 준비하느라 힘들어하지 말고 편한 마음으로 좋은 시간을 보내자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UPINEWS〉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뷰'에 의뢰해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의 35.7%가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국민 3명 중 1명은 이번 추석에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는 조사결과다.​


▲ 지난해 9월 23일 서울 중구 남산골한옥마을을 찾은 시민들이 송편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다. [정병혁 기자]


차례 안 지내는 집 늘어…"간소한 추석 위해 합의"


차례를 지내지 않는 것은 '종교적 이유'라는 응답이 40.6%로 가장 많았지만, '간소한 추석을 지내기로 가족들과 합의해서'라는 응답도 28.2%에 달했다. 과거에는 "종교 때문에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가족을 제외하곤 대부분 차례를 지냈지만, 이제 "추석에 가족들과 더 좋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차례를 간소화하거나 생략하는 집이 급속히 늘고 있다.

지역별로는 보수적인 대구·경북에서는 80.7%가 차례를 지낸다고 응답한 반면, 서울과 호남은 차례를 지낸다는 응답이 각각 53.2%, 53.9%로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 추석 명절 차례 여부 [리서치뷰]


차례를 지내지 않는 가족은 갈수록 늘어날 전망이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최근 조합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결과, 남성의 16.7%, 여성의 2.4%만 "사후에 자손들이 나를 기리는 제사를 지냈으면 좋겠다"고 응답했다. 남성의 84%, 여성의 대부분은 자신의 사후 제사나 차례를 지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전문직 종사자인 윤영숙(49) 씨는 "지금은 매년 명절 때마다 시댁에 가서 차례를 지내는데 연로하신 시아버님이 돌아가신 후에는 형식적인 제례는 하지 않을 생각"이라며 "보수적인 남편을 계속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업주부인 송미선(45) 씨는 "종교가 카톨릭인데도 어르신들이 무교라 기일 제사뿐 아니라 명절 때마다 차례를 지내고 있다"며 "남편과는 추도미사로 제사와 차례를 대신하기로 얘기했는데 어른들에게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가족여행으로 대체…연차 활용해 긴 휴가 즐기기도

결혼 4년차인 안희국(29) 씨는 작년 추석에 10일 동안 아내와 함께 스페인 여행을 다녀왔다. 안 씨는 "올해도 연휴가 길었으면 분명 해외여행을 계획했을 것"이라며 "올해는 친가와 처가에 가서 어른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안 씨처럼 추석연휴를 활용해 국내외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추석모임을 가족여행으로 대체한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 24.2%가 "있다"고 응답했다. 응답자 4명중 1명은 추석 때 가족 모임을 가지 않고 여행을 떠난 셈이다.

가족여행의 행선지로는 국내여행이 69.5%였지만 해외여행도 25.3%에 달했다. 비용이나 시간 때문에 추석연휴기간 동안 국내여행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지만 연차를 활용해 해외여행을 떠나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따르면 지난 설 연휴(2월1일~7일)에 약 142만 명의 승객이 인천공항을 이용했다.

▲ 추석 모임 가족여행 대체 경험 [리서치뷰]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과 종합숙박 플랫폼 여기어때가 이번 추석연휴 계획을 조사 결과, 직장인 2570명 중 18.4%가 "여행계획이 있다"고 대답했다. 여행지는 국내여행(84.1%)을 계획한 응답자가 해외여행(15.9%)보다 5배이상 많았다. 이번 추석은 이전 설이나 예년의 추석 연휴에 비해 비교적 짧은 연휴여서 가까운 국내여행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분석된다.

정혜정 씨도 지난 몇 년간 추석마다 해외여행을 떠났다. 지난해는 스페인을, 그 전 해는 사이판과 대만을 부모님을 모시고 다녀왔다. 정 씨는 "올 연휴는 짧기도 했고, 결혼 후 첫 명절이라 해외여행은 생각하지 않고 시부모님과 짧은 국내여행을 계획했다"면서 "연차를 활용하면 명절에 긴 휴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내년에는 해외여행을 고민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정 씨의 시어머니 이정숙(60) 씨는 "이번에 처음으로 명절에 여행을 가게 됐다"면서 "둘째 며느리 덕에 몸도 마음도 편하게 쉬다 올 수 있을 것 같다"고 정 씨를 치켜세웠다. 이 씨는 "며느리도 친정부모님의 귀한 딸"이라며 "같은 여자로서 며느리에게 명절이 '노동의 날'이 아닌 '휴식의 날'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간소해지는 차례상…며느리 '명절증후군' 사라지나

명절기간 동안 여성들만 힘들게 음식준비를 하는 모습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임주환(35) 씨는 "아내가 명절에 우리 집에서 힘들게 일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다"면서 "얼마전부터 형제들이 각자 집에서 음식을 해오거나 사가는 식으로 바뀐 후 명절 분위기가 훨씬 좋아졌다"고 강조했다.

사실 추석명절만 지나면 부부싸움을 하는 가정이 적지 않다. 며느리들은 시댁에 가서 허리가 휘도록 일을 하고 남성들은 차려놓은 음식에 형제들이나 친척들과 술잔을 기울이는 게 전통(?)적인 명절 모습이다. 그러다 보니 명절을 전후해 이른바 '명절증후군'이라고 불리는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여성도 많다. 이 때문에 시댁에서 돌아온 후 주부들이 '단기파업'을 선언하는 경우도 많다. 전통을 지키려는 어른들이 계시는 집들은 이 같은 갈등이 더 심하다.

명절 차례상을 차리는 것을 여성에게 부담을 지우는 관행이 문제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임혜숙(46) 씨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추석 전날 내려가서 전 부치고 송편 빚는 모든 일은 모두 여자의 몫이었다"며 "남편은 기껏해야 상차림 정도만 도와줬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음식 가짓수도 많이 줄었고, 사회 추세가 남자들도 도와주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 〈UPINEWS〉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뷰'에 의뢰해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의 35.7%가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픽사베이]

차례상은 기본적인 상차림이 존재한다. 각 지방과 가정의 전통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맨앞 줄에는 과일과 한과, 둘째 줄에는 나물류, 셋째 줄에는 탕, 넷째 줄에는 적과 전, 다섯째 줄에는 밥과 국 등을 놓는다. 한국국학진흥원의 종가 제례음식 자료집성에 따르면 아직까지도 종가의 차례상에 30가지가 넘는 음식이 올라간다.

이런 차례상이 최근 빠르게 간소화되고 있다. 농촌진흥청이 2010년부터 지난 9년간 추석 전 농산물 구매 동향을 분석한 결과, 즉석밥과 쇠고기 가공품, 냉동식품 등 '간편식' 구입액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집에서 직접 전을 부치겠다는 응답이 44.9%에 불과했고, 36.9%는 완성된 제품이나 반가공 제품을 구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본래 유교에서는 기제사(고인이 돌아가신 날 지내는 제사)만 지낼 뿐 명절엔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한 전문가는 "추석차례는 한 해 농사가 잘 된 것을 감사하며 햅쌀로 밥을 짓고 송편을 빚어 올리던 것이 조선 후기 양반들이 경쟁을 벌이면서 차례상이 제사상보다 더 복잡해졌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전통 차례법을 고집하기보다는 시대 변화에 맞는 차례 문화를 정착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차례는 가족이 함께 모여 음식을 함께 나누고 조상에게 인사를 올리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짧아지는 가족모임…대화주제는 가족 근황·건강 등

회사원 박기현(35) 씨는 "추석 당일 오전 남양주 친가를 갔다가 오후에 수원 처가를 간다"면서 "연휴 중 가족 모임에는 딱 하루만 쓰기 때문에 나머지 연휴를 온전히 아내하고 아이와 지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리서치뷰 설문조사에서 최근 3년간 가족 모임 참석여부를 물은 결과 한 차례도 참석하지 않았다는 응답은 7.1%, 1번 참석은 10.7%, 2번 참석은 7.4%로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의 74.9%는 "3년동안 계속 가족 모임에 빠지지 않았다"고 응답해 대부분 국민들은 추석명절에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주희(27) 씨는 "추석 당일에는 부모님과 할머니 댁에 가고 다음날 외가에 갈 예정"이라며 "매년 명절 때마다 어른들을 뵙고 인사드리고 친척들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빠르게 명절의 의미가 달라지고 있다. 추석연휴 전 주말에 부모님을 찾아뵙고 연휴기간을 오롯이 즐기는 젊은 부부나 청년층이 늘고 있다. 설문조사에서 가족 모임에 참석하지 않는 이유로는 '일이 바빠서'가 26.7%로 가장 많았고, '시험이나 취업 준비 때문에'가 14.1%로 뒤를 이었다. '가족관계가 소원해서'라는 응답과 '경제적 형편 때문에'라는 응답이 각각 13.8%와 13.5%였고, '명절스트레스 때문'이라는 응답은 9.5%였다.

▲ 지난 3년간 추석 가족 모임 참석여부 [리서치뷰]


올 추석연휴 때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은 '이틀'이라는 응답이 37.5%로 가장 많았고, 사흘 이상 가족들과 보내겠다는 사람도 33.4%였다. 하루만 가족들과 보내는 응답은 22.9%로 나타났다. 나홀로 지내겠다는 응답도 6.3%였다. 나홀로 지내겠다는 응답은 남성(8.6%), 20대(7.9%), 서울(10%), 무직(17.1%)로 나타나 취업준비 때문에 가족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는 20대 남성이 많은 것으로 분석됐다.

대학 졸업 후 취업준비중인 이준열(28) 씨는 "대학졸업 후 취업준비 기간이 늘어나면서 명절 때 고향에 가기가 꺼려진다"고 말했다. 실제 취업문제나 결혼 문제로 명절에 가족이나 친지를 만나기를 회피하는 청년층들이 상당수 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부모가 자식을 찾는 역귀성은 6.5%였으며 자녀들이 부모를 찾는 귀성은 58.5%였다. 귀성이나 역귀성이 아닌 기타 형태도 35%에 달했다. 추석 가족 모임에서 주로 나누는 대화 주제로는 '가족 근황과 건강'이 43.6%로 가장 많았고 '일자리와 소득 등 경제문제'가 18.7%, '정치'가 17.8%였다.

이밖에 '보육과 교육문제'가 5.6%, '부동산·주식 등 재테크' 2.9%였다. 최근 세대간 갈등 때문에 정치에 대한 대화가 크게 줄어드는 추세였지만, 이번 추석에는 '조국 청문회'를 둘러싼 '정치' 문제와 '교육'에 대한 가족들의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 늘 것으로 보인다.


UPI뉴스 / 윤재오·장기현 기자 yjo@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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