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1주년 특별기획①] 4차 산업혁명, 기회인가 위기인가

류순열 기자 / 기사승인 : 2019-07-22 11:2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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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비용 제로·협력적 공유사회냐, 일자리 감소에 독점과 양극화 심화냐

 

확실히 '천재'들은 다르다. 100년앞을 내다본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1946)도 그중 한 명이다. 대공황기(1930년대) 경제학의 새 지평을 연 그는 '한계비용 제로사회'를 예견했다. 기술 혁신으로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이 '제로'를 향할 것이라는 걸 알았다. 한계비용(maginal cost)이란 재화와 서비스를 한 단위 더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추가 비용으로, 곧 가격이다.

인도 정치인 마하트마 간디(1869∼1948)의 혜안도 놀랍다. 그의 통찰은 시대를 뛰어넘었다. 산업화와 중앙집중형 대량생산을 찬미하던 시대에 '분권화한 대중생산'을 주창했다. 간디는 경제력을 중앙집권화하고 시장을 독점하려는 수직통합형 사업체의 대량생산을 믿지 않았다. 영국의 산업 기계가 인도 대륙을 가득 채우며 풍부한 천연자원을 집어삼키고 주민들을 궁핍에 몰아넣는 것을 목격한 터였다.



간디가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바로 대중이 자기 집과 이웃에서 하는 지역생산이었다. "물론 대량생산이다. 하지만 집단에 기초하는 게 아니라 각자의 집에서 이뤄지는 대량생산이다. 개인생산을 수백만배 증식하면 그 역시 대량생산이 아닌가."(경제비전에 대한 간디의 답변)


간디는 또 "생산과 소비가 재결합해야 한다"고 믿었다. 요즘 용어로 '프로슈머'(생산자이자 소비자)를 역설한 것이다. 케인스의 예견이 그렇듯 간디의 이런 생각은 시대를 뛰어넘는 통찰이었다. 작금 4차 산업혁명이 열고 있는 새로운 세상이 바로 간디가 제시한 경제모델과 흡사하다. 4차 산업혁명으로 케인스의 예견이 현실화하듯 간디의 꿈도 4차 산업혁명으로 실현되는 셈이다.


4차 산업혁명이 바꾸는 세상 


혁명 열기는 달아올랐다. 블록체인,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3D프린터, 드론, 자율주행 등 여러 신기술들이 혁명을 이끌고 있다. 블록체인은 정부와 산업 현장 곳곳을 파고든다.


블록체인 세상에서 더 이상 중개기관은 필요치 않다. 중개인이 없어도 시스템이 신뢰를 보장한다. 블록체인을 전지구적 신뢰시스템이라 부르는 이유다.


이 시스템 안에서 중개수수료는 사라지고 복잡한 절차는 생략·압축된다. 한마디로 싸고, 편리하며, 안전하다. 금융거래, 암호화폐, 무역계약, 자율주행, 스마트시티 등 적용분야가 무궁무진하다. 삼성전자는 암호자산 전자지갑 서비스(삼성 블록체인 월렛)를 탑재한 스마트폰(갤럭시 S10)을 출시한 터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빅데이터는 내 삶을 설계하고, AI는 민원상담부터 자산운용까지 인간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모범 운전자는 보험료를 할인받고, 보험사는 우량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운전습관연계보험'(현대해상, DB손해보험 등)도 빅데이터와 AI의 결실이다.


간디가 주창했던 대중생산의 시대는 IoT와 3D프린터가 열고 있다. 사물인터넷(IoT)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모든 사물을 연결하여 정보를 상호 소통하는 지능형 기술과 서비스를 말한다. 이 신기술로 내 칫솔이 내 치아의 건강상태를 체크한다. 인체에 부착되거나 심긴 센서가 생체 기능을 모니터링한다. 미국 물류업체 UPS는 6만여 회사 차량에 센서를 달아 각각의 부품을 모니터링해 도로상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고비용의 고장을 미연에 방지한다.


3D프린팅은 사물인터넷 경제에 동반되는 제조 모델이다. 소프트웨어(대개 무상 공개된 '오픈소스' 소프트웨어)가 지시를 내리면 프린터 안에 있는 용해된 플라스틱이나 금속 등이 층층이 쌓이며 제품을 만든다. 이미 장신구에서 항공기 부품, 인공기관 등에 이르는 제품이 3D프린팅을 통해 생산되고 있다. 수년전 3D프린터가 만든 최초의 자동차 어비(Urbee: 캐나다 코어에코로직 제조)는 최대 시속 64㎞로 달린다. 
 

'협력적 공유사회'의 도래


IoT가 보편화하고 가정마다 지역마다 3D프린터가 갖춰져 소비자 스스로 필요한 재화를 만들어내는 세상이 본격화하게 되면 경제 패러다임도 대변화를 맞을 것으로 전망된다. 중앙집중형 생산방식은 허물어지고 분권화한 대중생산의 시대가 개막한다. 특히 모든 재화의 가격이 거의 제로에 근접하면서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역사적 종착점에 다다를 가능성이 크다고 미국 사회사상가 제러미 리프킨은 저서 <한계비용 제로사회>에서 주장했다.


리프킨은 "앞으로 20∼30년 내에 방대한 글로벌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프로슈머들이 제로에 가까운 한계비용으로 물리적 재화와 서비스는 물론이고 녹색에너지까지 생산하고 공유할 것이고 온라인으로 가상의 교실에서 역시 제로에 가까운 한계비용으로 학습할 것이며, 재화와 서비스를 거의 무료로 나누는 경제의 시대로 인도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부연하면 "극도의 생산성이 주도하는 글로벌 네트워크가 모든 사람과 모든 사물을 연결함으로써 인류는 더욱 빠르게 재화와 서비스가 거의 무료 수준인 시대로 이동하고 그와 더불어 자본주의는 다음 반세기에 걸쳐 쇠퇴하며 '협력적 공유사회'가 경제생활을 조직하는 지배적 모델로 자리잡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리프킨은 "협력적 공유사회에선 소유권보다는 접근권이 중요해지며, 부를 축적하고자 하는 전통적인 꿈은 지속가능한 양질의 삶이라는 새로운 꿈으로 대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독일 컨설팅업체인 롤란트 베르거도 4차 산업혁명 보고서, '4차 산업혁명 이미 와 있는 미래'에서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오는 변화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은 제품 소유보다 사용을 중시하는 쪽으로 거대한 이동이 시작된 점"이라면서 "이 것은 기존 성장과 다른 방식의 성장이 가능함을 뜻한다"고 밝혔다.


일찍이 케인스도 기술혁신이 거의 공짜에 가까운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면 인류가 노역과 곤궁에서 자유로워지고, 인간 정신이 금전적 관심사에 얽매이는 집착에서 해방되는 미래를 기대했다.


기술혁신의 그늘, 독점과 양극화


너무 낙관론에 치우친 전망일 수 있다. 오히려 독점의 폐해가 훨씬 더 심각해질지도 모른다. "정보가 초대형 글로벌 그룹에 집중되면서 사람들의 삶이 거기에 종속되는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의료정보 같으면 IBM의 왓슨이, 개인정보는 구글과 아마존이 엄청난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수년전부터 "이미 독점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일자리 문제도 당장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4차 산업혁명이 고용불안과 소득 양극화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적잖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작년부터 "4차 산업혁명이 고용에는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라고 누차 말했다. "없어지는 일자리보다 새로운 일자리를 더 많이 창출할 수 있을 지 의문"이라면서.


 이 총재는 인터넷 쇼핑업체들이 소매점을 대체하면서 유통비용을 줄여 가격을 낮추는 '아마존 효과'에 대해서도 "소비자 입장에서는 좋지만 물류혁신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의 고용 안정성이 저하되는 것은 걱정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케인스는 이를 '기술 혁신으로 인한 실업'(technological unemployment)으로 불렀다. 노동력을 절감하는 수단을 발견하는 것이 노동의 새로운 용처를 발견하는 것보다 빠른 속도로 이뤄지는 탓에 발생하는 실업을 지적한 것이다.


위기인가, 기회인가


장밋빛 전망이 실현된다고 해도 공평하고 일률적일 수는 없다. 국가별로, 계층별로 격차가 불가피하고 그로 인해 다시 독점과 양극화는 진행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이 기회일 수도, 위기일 수도 있는 이유다.


한국은 어떤가. "자동차는 없는데, 운전 연습만 열심히 하는 꼴이다." 실리콘밸리 발명왕 김문주 박사는 AI 등 한국의 4차 산업혁명 진행 상황에 대해 이렇게 촌평했다. 한국이 다시 뒤처지지 않을까, 기회가 아니라 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게 김 박사의 걱정이다.


그래서 김 박사는 자신의 특허기술을 들고 작년 귀국해 정부에 담대한 제안을 했다. "원천기술을 제공할 테니 어떤 기업이든 그냥 쓸 수 있게 공유 특허기술로 만들라"고. 지금은 광주시와 손잡고 뜻한 바를 추진중이다. 지난 6월초 이용섭 광주시장은 김 박사를 기술고문으로 위촉했다.


김 박사의 특허 기술은 '하이브리드 멀티코어칩'. 이 기술로 4차 산업혁명기 한국에 기여하고 싶다는 게 그의 꿈이다. 김 박사는 이를 '길목 특허'라고 불렀다. "한국이 인텔칩을 만들지는 못하지만 멀티코어칩, 즉 시스템온칩(SoC) 기술에선 길목을 선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외국 원천기술에 코꿰는 상황,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고 김 박사는 강조했다.


일본의 부품기술에 너무 의존하다보니 과거사와 얽혀 꼼짝없이 경제보복을 당하는 현 상황에서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김 박사는 1981년 글로벌 기업 IBM에 입사해 '치프 엔지니어'(Chief Engineer·수석 엔지니어)에 올랐고, 마침내 '마스터 인벤터'(Master Inventor·발명왕)라는 타이틀까지 얻었다. 한국계 인사로는 실리콘밸리에 입성해 엔지니어로서 가장 영예로운 지위에 오른 유일한 사람이다. 업계에서는 김 박사의 기술을 잘 활용하면 한국이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결론적으로 4차 산업혁명은 인류에 재앙보다는 축복, 한국에 위기이기 보다 기회가 될 것이란 기대가 더 크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을 지낸 문우식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당장은 고용 측면에서 부정적일 수 있고, 한계비용이 제로까지 갈 것이라고 보지는 않지만 전체적으로 긍정적일 것"이라고 낙관했다.


그 옛날 케인스도 '기술 혁신으로 인한 실업'을 걱정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낙관론을 폈다. "실업이 단기적으로는 고통을 유발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혜택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참고도서 : <한계비용 제로사회>(제러미 리프킨), <4차 산업혁명 이미 와 있는 미래>(롤란트 베르거)


UPI뉴스 / 류순열 기자 ryoos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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