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속 25미터 강풍 맞서 밤새 사투 벌여"

장기현 기자 / 기사승인 : 2019-04-15 11:3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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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충북 영동소방서 김욱진 소방장 강원 산불 진화 26시간의 재구성
"고성 시내 100m 간격 화염 휩싸여 전쟁터 방불"
▲ 충북 영동소방서 김욱진 소방장이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에서 UPI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1 고성으로 가는 길

온 국민이 잠자리에 들 무렵인 지난 4일 오후 11시 50분. 10년차 베테랑으로 오후 6시부터 당직근무를 서고 있던 충북 영동소방서 김욱진(38) 소방장은 강원도 고성으로 출동하라는 긴급 명령을 받았다.

이미 방송을 통해 강원도 산불이 심상치 않게 번지고 있음을 파악하고 있던 그는 명령이 전달되기 전부터 출동을 직감하고 있었다. 김 소방장은 당직자 중 가장 고참이자 영동서에서 동원할 수 있는 가장 큰 물탱크(12t) 차량 담당이었다. 개인 안전장비와 여분의 호스 등을 미리 챙겨둔 상태라 출동 지시가 내려오자마자 이재룡(39) 소방장과 함께 고성으로 출발했다.

김 소방장은 충북 소방으로 내려오기 전 강원도에서 5년간 근무했다. 강원도에서 수차례 산불 진압에 투입된 그였지만, 이번 산불이 그가 겪어온 여느 산불과 다르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일단 소방인력이 타 시·도로 출동하는 경우 자체가 흔치 않은 일이었다. 시·도의 경계에 있는 서는 간혹 지원출동을 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번처럼 강원도 산불 진압을 위해 충북의 가장 끄트머리에 있는 영동서가 출동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경우에 속했다. 게다가 산불현장에서는 이미 대응 3단계가 발령된 상황이었다.

#2 베이스캠프 도착

김 소방장은 청주를 통과하는 시점에 강한 산불로 양양IC가 통제된다는 무전을 받았다. 제1영동고속도로로 우회하라는 명령을 받고, 동해속초고속도로를 타고 올라가 속초IC로 빠졌다. 

 

속초IC를 들어서는 순간 같이 간 이 소방장과 눈이 마주쳤다. "이런 거 본 적 있냐"는 이 소방장의 질문에 김 소방장은 고개를 저었다. 도로는 연기로 꽉 차있었고, 창문을 열지 않아도 타는 듯한 냄새와 열기가 느껴졌다.

도심에 다다르자 모든 것이 화염에 휩싸여 있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도시가 온통 불과 연기로 뒤덮인 느낌이었다. 어린애 주먹만한 불씨가 정신없이 날아다녔고 사방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고성소방서 앞 공원과 체육관은 이미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그 주변으로 100m 간격으로 크고 작은 불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광경이었다. 화세(火勢)는 소방력보다 훨씬 강했다. 진화작업에 투입된 소방관들은 작은 불은 포기하고, 큰 불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할 수밖에 없었다.

5일 오전 5시 30분, 김 소방장은 집결지인 경동대학교 제1캠퍼스에 도착했다. 산불통제단 지휘소가 자리잡은 곳이었다. 이 일대에서도 화재 진압이 진행되고 있었다. 차에서 내리기 위해 문을 여는데 초속 25m의 강한 바람이 몰아닥쳤다. 강철로 된 소방차 문이 흔들릴 정도의 강한 바람이었다. 

 

그는 도착과 동시에 지휘관에게 보고했다. "충북 영동소방서 중앙 30호 김욱진 외 2명, 현장 도착 보고드립니다!"
 

 

▲ 지난 4일 고성에서 발생한 불을 진화하기 위해 한 소방관이 물을 뿌리고 있다. [소방청 제공]

 

#3 고성일대 화재 진압

집결지에 도착한 지 10분 만에 김 소방장은 고성소방서 대응과 직원의 인솔에 따라 속초기상대로 이동했다. 기상대 지붕에서 연기가 나고 있었고, 주변 조형물은 불에 타고 있었다. 바로 진압에 나섰다. 그는 이미 진화작업을 수행하던 3명의 소방관을 도와 1시간 만에 기상대 일대의 불씨를 잡았다.

김 소방장은 물을 보충한 뒤 인근 승마장으로 이동했다. 야적장 적재물 쪽이 불이 심해 먼저 진화에 나섰다. 인솔자까지 나서 한 시간 가량 무려 물 5000L를 쏟아부은 끝에 겨우 불길을 잡을 수 있었다. 입에서는 단내가, 옷에서는 탄내가 났다. 

 

이렇게 네 군데를 돌며 불씨를 잡았다. 강원지역 소방관들이 큰 불은 끈 상태라, 지원 출동자들은 신속하게 이동하면서 남은 불씨를 잡는 데 집중했다.

5일 오전 9시, 강원도 일대에 재난사태가 선포됐다. 김 소방장은 큰 불을 잡아 일단락된 고성을 떠나 불길이 거세지고 있는 강릉으로 이동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집결지인 강릉 망상컨벤션센터에 도착하자 충남, 충북, 경북 등지에서 올라온 300여대의 소방차가 도열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2차 출동 명령을 받은 영동소방서에서도 인원 14명과 펌프차 3대가 추가로 도착했다. 김 소방장은 처음으로 안도감을 느꼈다. 다행히 바람도 잦아들고 있었다.

#4 남양2리 사수작전

5일 오전 10시 30분, '남양2리를 사수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김 소방장을 포함한 영동서 소방관들은 강원 강릉시 옥계면 남양2리로 이동했다.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산불이 더 커지지 않도록 막는 것이 주어진 임무였다.

 

그 이후부터 저녁 7시까지 하루 종일 순찰과 진압을 반복했다. 휴식은 고사하고 밥 먹을 시간마저 내기 힘들었다. 바람이 잦아드는 틈을 이용해 두 팀으로 나눠 교대로 점심을 먹었다.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어디로 넘어가는지 정신이 없었다.

김 소방장은 옥계 119안전센터 앞 소화전에서 물을 채우는 중에 대응 2단계로 하향 조정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근처 경로당을 찾아 야간에 숙소로 쓸 수 있는가를 물었다. 전국 어디든 타지에서 파견된 소방관들을 위해 마련된 숙소는 따로 없었다. 다행히 경로당 측은 흔쾌히 장소 사용을 허락했다. 

 

화마와 사투를 벌이느라 파김치가 된 몸을 잠시나마 누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장기전이 된다면 이곳에서 휴식을 취할 계획이었다. 

 

▲ 충북 영동소방서 김욱진 소방장이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에서 UPI뉴스와 인터뷰를 마치고 서울종로소방서 앞을 지나가고 있다. [문재원 기자]


#5 26시간 만의 복귀

5일 오후 9시, '6명만 남기고 복귀하라'는 명령이 시달됐다. 고성의 큰 불은 대부분 진압이 완료됐고, 강릉 또한 산불이 번지는 속도가 전날과 비교해 현저히 떨어진 것을 고려한 조치였다. 더불어 밤이라 화재 진압에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1차로 출동했던 김 소방장은 복귀조에 포함됐다.

돌아오는 길에 기름을 넣기 위해 여주휴게소에 들렀다. 그때 한 아주머니가 차에서 내리더니 초코파이 한 박스를 건넸다. 그러면서 "고맙다"고 했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그는 생각했다. "아, 이 분들이 우리에게 생명과 재산을 맡긴 사람들이구나, 소방관이 되길 정말 잘했다"

6일 오전 2시, 김욱진 소방장은 영동서를 출발한 지 26시간 만에 복귀했다. 

 

UPI뉴스 / 장기현 기자 jkh@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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