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의 도발, '패망'의 길로 가나

류순열 기자 / 기사승인 : 2019-08-13 09: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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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기업의 발 빠른 대응에 일본 수출규제 칼날 무뎌지고
재정, 통화정책 여력 바닥난 아베노믹스는 경제보복 부메랑 맞을 듯
고가 마고토 전 자민당 간사장 "태평양 전쟁 말기와 같은 정치의 빈곤"

한국과 일본은 지금 전쟁중이다. 늘 그렇듯 일본이 도발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먼저 칼을 빼들었다. 수출규제, 즉 '경제보복'이라는 이름의 칼이다. 그래서 경제전쟁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이는 외피일 뿐 본질은 역사전쟁이다.


일본 기업이 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라는, 작년 10월 한국 대법원 판결이 빌미였다. 지금 벌어진 사태의 뿌리는 결국 한일 과거사다. 평화헌법을 뜯어고쳐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려는 아베에게 과거사는 족쇄와 같다. 그래서 과거 침략의 역사를 부정하고 덮으려는 아베, 과거를 드러내 청산하려는 한국의 충돌은 불가피한 것이다.

그렇다면 아베의 도발은 성공할 것인가. 과거사를 덮고 보통국가의 꿈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인가. 결론부터 말한다면 성공하기 어렵다. 망조(亡兆)가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28일 일본 인텍스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한 뒤 행사장으로 향하고 있다. 서로 외면하듯 엇갈린 모습이 한일 양국의 앞날을 예고하는 듯 하다. [뉴시스] 


"반성도, 사죄도 한 적 없다"


아베 총리는 위안부 합의 파기와 징용피해자 배상 판결을 들어 한국을 "믿을 수 없는 나라"로 규정했다. "한국이 한·일 청구권 협정에 위반하는 행위를 일방적으로 했다"는 것이다.


한·일 청구권 협정이란 1965년 박정희 정권이 "굴욕 외교"라는 국민의 반대를 억누르고 맺은 그 협상이다. 한국은 당시 3억 달러의 무상 자금과 2억 달러의 차관을 챙기고 대일 청구권을 포기했다.


당시 협정의 가장 큰 문제는 식민지배에 대한 일본의 반성과 사죄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역사청산의 대전제 조건인 반성과 사과를 건너뛴 것이다. 따라서 당시 일본이 건넨 돈도 배상금이 아니라 지원금 성격이다.


일본의 석학 와다 하루키(81ㆍ和田春樹)도쿄대 명예교수는 "사죄도 없이 마무리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은 불완전한 협정이었던 만큼 청구권 협정으로 모든 절차가 끝났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은 어불성설"(8월9일자 한국일보 인터뷰)이라고 밝혔다.


개인 청구권 이미 소멸했나


그렇지 않다. 대한민국 대법원(2013다61381 판결)은 1965년 청구권 협정에 개인 청구권이 포함된 것은 아니라고 해석했다.


"청구권 협정은 일본의 불법적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에 근거하여 한일 양국 간의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정치적 합의에 의하여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피징용 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의 변제청구'에 강제동원 위자료 청구권까지 포함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2차 세계대전 종료를 위하여 1951년 연합국이 일본과 맺은 평화조약이다.


와다 하루키 교수도 "청구권 협정이 불완전한 만큼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개인 청구권도 당연히 소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양국의 변호사와 시민 활동가들도 지난 11일 도쿄(東京) 닌교초(人形町)구민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 정부가 한국을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라'라고 반복해서 비난하고 있지만, 한국 대법원은 한일 청구권 협정의 유지를 전제로 법 해석을 해 판결을 내렸다"며 "강제징용과 근로정신대 문제에 관한 한국 대법원의 판결은 인권 보장의 마지막 보루로서의 역할을 다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  1961년 11월 일본을 방문한 박정희(왼쪽)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과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 기시 전 총리는 A급 전범으로 아베 신조 총리의 외할아버지다. 한일 국교정상화의 막후 개입으로 훗날 박정희 대통령에게 일등 수교훈장을 받는다. [대한뉴스]


무뎌지는 아베의 칼날


삼성전자가 벨기에에서 이미 반도체 핵심 소재를 조달하고 있다고 일본 경제전문 매체 '닛케이 아시안 리뷰'가 지난 11일 보도했다. 이 매체는 삼성 임원 출신인 한양대 박재근(반도체공학) 교수를 인용해 "삼성전자가 벨기에의 한 업체에서 포토레지스트(감광액)를 조달하고 있다"고 전했다.


포토레지스트는 최첨단 칩 제조 공정에서 실리콘 웨이퍼에 회로 패턴을 저장하는데 사용하는 화학물질로 일본 경제산업성이 1차 수출규제 대상으로 삼은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3종중 하나다.


이 게 사실이라면 일본 경제보복으로 반도체 기업들의 소재 조달에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이미 일본의 포위망을 뚫었다는 얘기다. 사실 여부를 확인되지 않았다. 박 교수는 "인터뷰를 한 사실 자체가 없다"며 "오보"라고 했고, 삼성전자는 "공급선 다변화를 위해 노력중이라는 것 외에 구체적인 공급선에 대해서는 확인해주기 어렵다"고 밝혔다.

 
어쨌든 지금 기업은 대안을 마련중이고, 정부도 20대 주요품목은 1년내, 80대 품목은 5년내 안정적 공급망을 갖추겠다며 부품·소재의 탈일본을 선언한 터다. 한국 경제는 시간이 갈수록 일본 경제보복의 내성을 키울 것이다.


더욱이 한국은 이제 일본을 부러워하며 추종하던 예전의 한국이 아니다. 지난 20년간 한국 기업 이익은 7배 가량 증가했다. 소니, 파나소닉 등 일본의 간판 기업 여러개를 합쳐도 삼성전자 하나만 못하다. 미국 지식재산권자협회(IPO)가 발표한 '2018년 미국 특허등록 상위 300대 기업·기관(Top 300 Organizations Granted U.S. Patents in 2018)' 명단도 상징적이다. 삼성전자는 12년째 2위, LG는 3년 연속 10위권에 들었으나 일본 기업은 캐논 한 개만 포함됐다. 10년전만 해도 일본 기업 6개가 톱10에 있었다.


위기의 아베노믹스


"잃어버린 30년을 찾겠다"던 아베노믹스는 이 번 사태로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가 일본 경제에도 막대한 손실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반도체가  우리 수출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으니 공격했는데, 일본이 놓친 게 있다. 급소를 노렸다고 하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글로벌 경쟁력을 가지고 방어 능력이 있는 기업을 건드리면서 오히려 성공 가능성이 낮아졌다"고 말했다.


"반도체를 비롯해서 국제 분업구조가 복잡한 산업일 수록 소재·부품의 경쟁력과 완제품의 경쟁력이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에 앞으로 삼성전자와 거래가 끊기면 일본 기업들이 지금의 경쟁력을 유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시간이 갈수록 일본 기업이 더 불안해 할 것"이라는 말했다.


안그래도 아베노믹스의 동력은 거의 소진된 터다. 국가부채는 GDP(국내총생산)의 2.5배를 넘어서 세계 최고, 기준금리는 -0.1%로 더 이상 내릴 수 없는 상태다. 정부가 쓸 수 있는 정책수단인 재정과 통화 두 정책의 여력이 바닥난 것이다. 미중 환율전쟁으로 엔화 가치가 상승 흐름인데도 금리 인하와 같은 방어 수단이 없는 셈이다. 고래싸움에 등 터지는 신세 한탄은 한국보다도 오히려 일본에서 더 크게 들릴 판이다.

이 때문에 아베 정권의 경제 보복 조치는 "뭘 해도 나아질 조짐이 보이지 않는 내부 경제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가미카제식 외부 때리기"(최배근 교수)라는 해석마저 나온다.


▲ 지난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아베규탄 4차 촛불문화제를 마친 참가자들이 조선일보사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정병혁 기자]


안팎으로 외톨이 되는 아베


국내외 여론도 싸늘하다. 아베 총리는 안팎으로 욕 먹고 있다. 한국 경제 보복의 부메랑으로, 또 G2의 환율전쟁 여파로 일본 경제가 더 어려워지면 비판 강도는 높아질 것이다.


미국 조지워싱턴대 그레그 브레진스키 교수는 최근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일본이 과거에 대해 속죄하지 않는 것이 세계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브레진스키 교수는 "2차 세계대전 동안 일본은 역사상 가장 끔찍한 잔혹 행위를 저질렀다. 이런 행위를 청산하지 못한 것은 동아시아를 훨씬 넘어서는 경제적 효과를 가져올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브레진스키 교수는 특히 2차 대전 이후 한일 간 계속된 갈등의 역사를 열거하면서 "일본이 참회하는 모습을 보이는 데 불성실해 논란을 계속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브레진스키 교수는 동아시아 관계와 국제사를 전공했는데, 과거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한 톤으로 비판한 바 있다.


일본내에도 비판 여론이 확산할 가능성이 적잖다.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 등 사회지도층 78명은 일본 정부가 '화이트리스트(전략물자 수출심사 우대국)' 제외 방침을 발표하기 직전 '한국이 적인가'라는 성명을 발표하고 "일본 국민과 한국 국민을 대립·반목하게 하는 행위를 중단하라"며 아베 정부를 규탄한 바 있다.


제2의 진주만 기습 되나


1941년 일제는 진주만 기습으로 미국과 전쟁을 감행하면서 패망의 길로 들어섰다. 지금 아베가 펼친 전선에도 패색이 어른거린다. 한국 경제의 급소를 노렸다는 조치가 결국 자충수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여당인 자민당 간사장을 지낸 고가 마고토(79)는 지난 12일 도쿄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베 일강 독주 체제'인 현 일본 정치를 "태평양 전쟁 말기와 같은 정치의 빈곤"이라고 혹평했다.


"4년간의 전쟁으로 300만 명이 희생됐는데 대부분 마지막 1년에 집중돼 죽었다. 그 때 멈췄다면 원폭도, 도쿄대공습도, 오키나와 전쟁도 없었을 것"이라면서. 일본 여권 내에서조차 1941년 호기롭게 감행한 진주만 기습의 참담한 결과를 떠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UPI뉴스 / 류순열 기자 ryoos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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